에리히 호네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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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호네커
다른 이름
erich honecker
에리히 호네커.png
"우리의 미래는 사회주의에 달려있다."
출생
1912년 8월 25일
독일 제국 노인키르헨
사망
1980년 5월 29일
칠레 산티아고
독일 민주 공화국

개요

에리히 호네커는 동독의 정치인, 서기장이다.

생애

어린 시절, 청년 시절

노인키르헨에서 광부인 빌헬름 호네커 밑에서 4남 2녀 중 4째로 태어난 에리히 호네커는 1926년 독일 공산당 청년 연맹에 가입하고, 1929년 독일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하는 등 어렸을 때 부터 공산주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호네커는 국제레닌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31년에 귀국하였다. 이후 호네커는 당시 권력을 잡았던 나치당에 반하는 반나치, 반파시스트 투쟁을 하다가 1935년에 투옥, 1937년에 공산주의자 혐의로 10년 형을 받는 등 굴곡진 청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발터 울브리히트 아래에서 다시 당 활동을 시작하여 이후 통일사회당의 초대 당원이 되었다.

동독 건국 이후

1949년 동독이 건국되자 전임적 위원 직위를 맡게 되었다. 이후 울브리히트 서기장이 퇴임하게 되면서 동독의 서기장이 되었다.

서기장

당시 호네커는 독특한 '소비자 공산주의' 체제를 채택하였다. 이것은 품질 높은 소비재가 시중에 생산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산업화,자동화,현대화'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국가의 경제발전에도 박차를 가하여서, 이후 동독을 공산권에서 가장 풍족한 국가로 만들었다. 호네커는 당시 동독의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주택난도 말끔히 해결하는 등. 뛰어난 경제정책으로 동독인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었다. 또한 호네커는 서독과 데탕트를 형성하면서, 서독과의 관광 및 무역을 증진시키기도 했다.

몰락

호네커는 고르바초프의 일련의 반동적 행보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이것은 동독의 사회, 경제를 안정시켰지만 소련이 동독에게 앙심을 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고르바초프는 동독에 압력을 넣어 호네커를 축출하고 개혁파인 에곤 크렌츠를 서기장으로 만들었다.

평가

호네커는 공업정책과 소비자 공산주의의 도입으로 동독을 공산권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만들었다. 특히 서독과 달리 영토도 작고, 공업지대도 없이 완전히 초토화된 동독을 염연한 강국으로 만든것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당시 동독의 1인당 GDP를 2008년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23000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2008년 1인당 GDP가 20430 달러인 대한민국에 비하면 엄청난 것이었다.(게다가 동독은 빈부격차도 적고,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했으니 실샹활 격차는 더 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호네커는 빈국이었던 동독을 선진국으로 만든 지도자라고 평가받는다.

출처

위키피디아 동독 문서 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B%8F%85 영문위키 동독 문서 https://en.wikipedia.org/wiki/East_Germany 영문위키 동독의 경제 문서 https://en.wikipedia.org/wiki/Economy_of_East_Germany 영문위키 에리히 호네커 문서 https://en.wikipedia.org/wiki/Erich_Honecker 그외 여러가지 잡다한 도서